몸이 자꾸 아프거나 감기에 자주 걸리면 "면역력이 떨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죠. 저도 1년 전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면역이 그저 '외부 병균을 막아주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몸의 면역 세포가 저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면역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싶더라고요. 면역은 단순히 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나와 외부를 구별하고, 필요할 때 적절히 반응하는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면역(免疫)이라는 한자어를 보면 '면할 면'에 '역병 역'입니다. 말 그대로 질병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죠. 영어로는 immunity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immunitas'에서 왔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immunitas는 면책 특권, 즉 세금이나 의무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의미했습니다(출처: NIH). 여기서 유래한 면역이라는 개념은 질병을 면해 준다는 뜻으로 발전했고,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지만 참 잘 만든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역의 핵심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쉽게 말해 내 몸의 세포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를 구별해서 외부 침입자만 공격하는 시스템이죠. 이 구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겪은 자가면역질환처럼 내 몸의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게 됩니다. 루푸스, 쇼그렌 증후군 같은 질환들이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약 37조 개인데, 이 중 적혈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포는 MHC 클래스 1이라는 일종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다닙니다. 이 주민등록증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면역 세포들은 이것을 보고 '이 세포는 우리 몸의 정상 세포구나'라고 인식합니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이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다르기 때문에 면역 세포가 즉시 알아차리고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의 작동 원리
면역 체계는 크게 선천면역(즉각 대응 팀)과 후천면역(지연 대응 팀)으로 나뉩니다. 선천면역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면역 시스템으로, 외부 침입자가 들어오면 즉시 반응합니다. 대표적인 선천면역 세포로는 대식세포(Macrophage), 호중구(Neutrophil),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가 있습니다. 대식세포는 이름 그대로 '큰 대(大)'에 '먹을 식(食)'자를 쓰는데, 외부 침입자를 잡아먹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감기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것이 대식세포입니다. 대식세포는 순찰 중인 경찰관처럼 몸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외부 침입자를 발견하면 즉시 잡아먹습니다. 먹은 후에는 그 바이러스의 잔여물을 MHC 클래스 2라는 '보고 철판'에 올려서 다른 면역 세포들에게 알립니다. 저도 교대근무를 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감기에 자주 걸렸는데, 그때마다 제 몸속에서 이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거죠.
후천면역은 선천면역보다 반응 속도는 느리지만 훨씬 정교하고 강력합니다. 대표적인 후천면역 세포는 다음과 같습니다.
- 헬퍼 T 세포(Helper T cell): 면역 반응을 조율하는 지휘관 역할을 합니다. 대식세포가 보고한 침입자 정보를 받아서 다른 면역 세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 세포독성 T 세포(Cytotoxic T cell): 킬러 T 세포라고도 불리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파괴합니다.
- B 세포(B cell):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로, 특정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응하는 미사일 같은 항체를 만들어 냅니다.
헬퍼 T 세포는 형사과장처럼 대식세포로부터 "이런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으면, 킬러 T 세포에게 "출동해서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라"고 명령하고, B 세포에게는 "이 침입자에 맞는 항체를 만들어라"고 지시합니다. 백신이 작동하는 원리도 바로 이 후천면역을 이용한 것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B 세포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미리 만들어 두기 때문에, 나중에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과 면역력 관리
그런데 이 정교한 면역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요? 킬러 T 세포가 정상 세포를 적으로 인식해서 공격하거나,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반응하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합니다. 저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왜 나에게 이런 병이?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왔는데"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억울하고 슬펐죠. 하지만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어떤 병인지 발견했으니 그에 맞는 치료를 하면 전처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 세포가 MHC 클래스 1을 가진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질환입니다. 예를 들어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 세포가 관절 조직을 공격하고, 제1형 당뇨병은 췌장의 인슐린 생산 세포를 공격합니다. 암 역시 넓게 보면 면역 질환의 일종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매일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하는데, 정상적이라면 면역 세포가 이를 즉시 제거합니다. 하지만 암세포는 면역 세포의 감시를 교묘하게 피해 다니면서 증식하는 것이죠(출처: National Cancer Institute).
저는 약을 꾸준히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예전처럼 완전히 똑같아지진 않았지만 많이 나아져서 일상생활로 돌아왔습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저는 교대근무를 4년 정도 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없었던 알레르기도 심하게 오고 면역질환에 장염을 달고 살았거든요. 직장을 바꾸고 교대근무를 끝내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니까 안 좋았던 모든 게 사라지더라고요.
연구에 따르면 포옹을 많이 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어도 실제로 감기에 덜 걸린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면역 세포의 기능이 억제됩니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는 면역 세포를 약하게 만들어서 외부 침입자와 싸울 힘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우울하고 마음이 힘들 때 괜히 몸이 아픈 것 같더라고요.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의 차이는 정말로 몸으로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면역 세포는 우리 혈액 속에만 약 500억 개가 있고, 림프절, 장, 간 등 몸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5억에서 1조 개 정도의 면역 세포가 우리 몸을 지키고 있죠. 이렇게 많은 면역 세포가 24시간 쉬지 않고 외부 침입자를 감시하고 제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일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면역 세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가면역질환을 겪으면서 저는 제 몸을 아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아파 봤으니까 몸을 더 아끼게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관리에 진심이 되어서 나중에는 성인병에 덜 걸리겠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면역 체계를 이해하고 나니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면역의 원리를 이해하고 꾸준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 스트레스 관리로 건강한 면역 체계를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c6Qajpejnk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279364/
https://www.cancer.gov/about-cancer/understanding/what-is-cancer